60을 기념하는 조선 후기의 행사
부부의 연을 맺고 60년을 함께 사는 것은 요즘에도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물며 평균 수명이 60년이 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부부가 함께 살아남아 회혼을 기념한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경사였습니다. 회혼식을 치를 때에는 노부부가 신혼 때처럼 똑같이 꾸며 입고 혼례의 절차를 다시 치렀습니다. 노부부의 옆에 선 자손들이 회혼을 맞은 부모님을 부축하고, 사회를 보고, 기럭아범이 되며, 신부를 단장해주고 거들어주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이 꽃병과 다과상 뒤 병풍에 가득해,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이 모두 모인 대가족의 풍성함과 화목함을 보여줍니다.
60을 기념하는 조선 후기의 행사
커다란 붉은 촛대에 불을 밝히고 신혼 때처럼 차려 입은 노부부가 잔치 음식을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다. 이들은 자손들의 부축을 받으며 술잔과 표주박에 술을 부어 마시는 의례를 행하고 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품계 중 최고위급 정1품직 정승은 조선의 행정기관 의정부를 총괄하고 6개 주요 관서의 의견을 수렴하는 막강한 권한을 누렸습니다. 조선의 관리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급이자 조선의 정치, 행정, 군사권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띤 자리였습니다. 이 그림은 주인공인 좌의정이 밤중에 공무를 끝내고 귀가하는 행렬을 그렸음을 밤하늘의 초승달과 횃불로 불을 밝혀 길을 인도하는 관리들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고위 관리가 외출할 때 쓰던 파초의 잎 모양 부채인 파초선을 받치고 종1품직 이상만 탈 수 있었던 가마 평교자에 앉아서 길을 인도하는 알도를 두 명이나 거느린 좌의정의 모습은 조선시대 최고위직 관리의 위엄을 보여줍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주인공은 커다란 부채인 파초선을 받치고 표피무늬 방석을 한 가마 위에 앉아 있다. 이 가마는 ‘평교자’로 종1품 이상의 관리만이 탈 수 있는 가마였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횃불을 들고 길을 밝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따라 횃불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달랐다. 달밤에 불을 밝히고 청사초롱을 든 사람으로 보아 이 관리는 공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행렬의 제일 앞에 길을 인도하는 두 사람이 있다.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은 두 사람이 길을 인도하는 알도의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각각 가마 덮개인 안롱과 가죽 의자인 호상을 들고 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판서는 정2품의 당상관으로 6개의 주요 관서를 총괄하는 관직입니다. 그 중 병조판서는 조선시대 군사 업무를 총괄하던 병조의 우두머리입니다. 당상관은 조선의 품계에서 정1품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관리로, 입법, 군사, 인사 등 주요 권한을 독점할 수 있었던 고위직입니다. 이 그림은 병조판서인 주인공의 행렬을 그린 것입니다. 종2품 이상의 관리만 사용할 수 있었던 수레 모양의 가마 ‘초헌’을 타고 많은 수행인을 거느리고 있어 그 위용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판서의 행렬에 비켜서서 목례하는 사대부와 무릎을 꿇은 하급 관리의 모습은 고위직 품계인 판서에게 예를 표하는 대비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주인공은 남색 철릭에 주립을 쓰고 표피무늬 깔개를 한 가마 위에 앉아 있다. 이 가마는 종2품 이상의 관리만 이용할 수 있었던 ‘초헌’으로 외바퀴가 있는 높은 수레이다. 앞뒤 총 4명의 구종이 초헌을 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정2품의 병조판서 행차에 사대부 한 명과 나졸 한 명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의례를 표하고 있다. 사대부는 목례만 하고 있는 것에 비해 나졸은 엎드린 모습이 대비된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행렬의 제일 앞에서 한 손에 부채를 들고 다른 손에 가마 덮개인 안롱을 든 사람이 소리치며 행인들을 물러나게 하고 있다. ‘인배’라고 칭하는 이 사람은 당상관 이상의 관리가 행차할 때 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 관노이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조선은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방 곳곳에 관리를 파견했고, 전국 팔도에는 해당 지역의 군사권, 사법권, 행정권을 통솔하는 종2품 관리, 관찰사를 임명했습니다. 관찰사의 주된 임무는 고을의 풍속과 민생을 살피고 각 고을의 수장인 수령을 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관찰사로 임명된 관리는 한양으로 와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드리고 임명장 및 관찰사의 임무와 군사 명령을 기록한 교서敎書와 유서儒書를 하사받은 후 부임지로 출발했습니다. 이 그림은 송도의 유수留守로 부임 받은 주인공의 행렬을 그렸습니다. 송도는 현재의 개성으로 고려의 옛 수도입니다. 조선은 옛 도읍지 및 군사적 요충지에 유수라는 지방관을 파견했고, 송도유수 2명 중 1명은 경기도 관찰사를 겸했습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행렬의 앞쪽에 붉은 통을 메고 가는 두 사람이 있다. 이는 왕이 관찰사 부임을 명령하는 문서인 교서敎書와 유서儒書이다. 교서는 왕의 행정명령 문서로 관찰사의 직무와 권한이 명시되어 있고, 유서는 군사명령 문서로 병력을 동원할 경우 병부를 확인한 후 시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관찰사를 상징하는 절, 월 등의 의장기와 사령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사령들이 장구, 북, 향피리 등 군악을 연주하며 행진하고 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말이 앞뒤로 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쌍마교’는 편안하면서도 위용이 대단해 도성 안에서는 왕족들만 탈 수 있었다. 도성 밖에서도 2품 이상의 관리에게만 허용되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관직에 진출하면 품계를 받았습니다. 품계는 정1품부터 종9품까지 총 18단계의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정1품부터 정3품을 당상관, 종3품부터 종9품까지를 당하관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이 그림의 화제(한림겸수찬시)로 미루어 이 사람은 정5품직 수찬으로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삼사로 불린 홍문관의 관리였고, 실록을 기록하는 임무를 띤 사관인 한림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문관의 관리는 임금을 측근에서 알현할 수 있으면서 사대부적 소신을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출세에 유리한 자리였습니다. 글을 잘 써야 함은 물론이고 왕의 자문에 응할 만한 학식과 인격을 두루 갖추어야 했기 때문에 청렴과 기개가 중요하여 청직淸職이라는 명예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조선시대 관청으로 출근하는 관리로, 청색관복을 입고 백마를 타고 있다.
조선의 품계와 직급
직위 | 품계 | 해당 장면 | 직위 |
---|---|---|---|
당상관 (정1품 ~ 정3품 상) |
정1품/종1품 | 7폭 좌의정시 | 정승 |
정2품 | 6폭 병조판서시 | 판서 | |
종2품 | 5폭 송도유수도임 | 유수 | |
정3품/종3품 | - | - | |
당하관 (정3품 하 ~ 종9품) |
정4품/종4품 | - | - |
정5품/종5품 | 4폭 한림겸수찬시 | 수찬 | |
정6품/종6품 | 3폭 응방식 | 장원급제자 | |
정7품/종7품 | - | - | |
정8품/종8품 | - | - | |
정8품/종9품 | - | - |
조선시대 관리가 길을 지나갈 때 ‘길을 비키시오’라고 소리를 질러 관리의 행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던 하인이 있었다. 한 손에는 부채를, 다른 손에는 비나 눈이 올 때 말이나 가마를 덮는 용도의 덮개인 안롱鞍籠을 손에 들고 있다.
조선 후기 과거시험
조선시대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1) 고위 관리의 추천을 받거나 2) 고위 관료의 자제이거나 3) 과거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든든한 배경이 없다면 사대부가 관직에 진출하는 방법은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뿐이었다.
과거 시험의 순서
사대부의 가장 큰 목표는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는 천민을 제외한 양인이라면 누구나 칠 수 있었고, 서당에 다니는 유년시절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과거에 급제한 평균 연령이 30세였으므로, 최소 20년은 공부해야 합격할 수 있었던 인생의 큰 관문이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에게는 조선의 관청에서 축하연을 베풀었고 사흘 간 마을을 행진하며 급제의 기쁨을 누리도록 했습니다. 이 그림은 급제자가 행한 사흘 간의 행진 모습을 그린 것으로, 왕이 하사한 어사화를 꽂은 과거 급제자가 악대의 연주와 광대들의 흥겨운 춤사위 속에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진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과거시험
조선시대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1) 고위 관리의 추천을 받거나 2) 고위 관료의 자제이거나 3) 과거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든든한 배경이 없다면 사대부가 관직에 진출하는 방법은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뿐이었다.
과거 시험의 순서
다리를 건너는 세 사람은 붉은 색 천으로 싼 길쭉한 형태의 물건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합격증서인 홍패이다.
조선 후기 과거시험
조선시대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1) 고위 관리의 추천을 받거나 2) 고위 관료의 자제이거나 3) 과거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든든한 배경이 없다면 사대부가 관직에 진출하는 방법은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뿐이었다.
과거 시험의 순서
북을 든 두 사람 앞에 악사들이 장구, 향피리, 대금, 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이는 무용이나 민속놀이에서 기본으로 삼은 ‘삼현육각’의 악기 편성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과거시험
조선시대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1) 고위 관리의 추천을 받거나 2) 고위 관료의 자제이거나 3) 과거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든든한 배경이 없다면 사대부가 관직에 진출하는 방법은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뿐이었다.
과거 시험의 순서
화려한 옷과 공작깃을 꽂은 모자로 장식한 광대들이 모란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춤을 추며 행진에 흥겨움을 더하고 있다.
조선 후기 과거시험
조선시대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1) 고위 관리의 추천을 받거나 2) 고위 관료의 자제이거나 3) 과거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든든한 배경이 없다면 사대부가 관직에 진출하는 방법은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뿐이었다.
과거 시험의 순서
과거 급제자는 앵무새의 색을 닮아 이름 붙여진 옷인 앵삼을 입고 관모의 복두에 왕이 하사한 꽃, 어사화를 꽂은 채 구종이 끄는 백마를 타고 행진하고 있다.
조선 후기 혼인 과정
*이처럼 절차가 복잡하여 왕족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인 경우 여섯 가지 절차를 모두 갖추었지만, 사대부 이하의 경우에는 4번과 6번만을 행했다고 한다.
조선은 통치이념인 유교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하여 신분에 따른 역할을 구분하였고, 혼인은 같은 신분 내에서만 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습니다. 사대부 집안 사이에서는 지역, 가문과 정치적 입장 등을 고려하여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혼인으로 후손을 낳아 대를 이을 뿐만 아니라 두 집안을 서로 연결하여 가문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혼인의 절차가 마무리되는 ‘친영親迎’의 단계로 신랑이 혼인식을 치르기 위해 신부집에 가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신랑이 이른 저녁 신부의 집에 직접 가서 사당에 예를 표하고 신부의 부모로부터 술을 받는 의식을 치른 뒤 금슬 좋은 부부의 상징인 기러기를 예물로 전달하였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으면 신랑·신부가 함께 신랑의 집에 와서 혼인식을 올렸습니다.
조선 후기 혼인 과정
*이처럼 절차가 복잡하여 왕족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인 경우 여섯 가지 절차를 모두 갖추었지만, 사대부 이하의 경우에는 4번과 6번만을 행했다고 한다.
말을 탄 신랑이 혼례를 치르기 위해 신부의 집으로 행차하고 있다. 신랑은 자색 비단의 단령을 입고 서대를 띠고 겹날개가 달린 사모를 쓰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던 복장이지만 혼인을 할 때에는 서민도 입을 수 있었다. 신랑이 탄 백마는 순결과 신성함을 상징한다.
조선 후기 혼인 과정
*이처럼 절차가 복잡하여 왕족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인 경우 여섯 가지 절차를 모두 갖추었지만, 사대부 이하의 경우에는 4번과 6번만을 행했다고 한다.
보자기에 감싼 기러기를 안고 걸어가는 기럭아범이다. 기러기는 암컷과 수컷의 사이가 좋아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며, 신부의 집에 들어갈 때 신랑이 사랑의 징표로 기러기를 가지고 가 상 위에 놓고 절하는 의식을 한다.
조선 후기 혼인 과정
*이처럼 절차가 복잡하여 왕족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인 경우 여섯 가지 절차를 모두 갖추었지만, 사대부 이하의 경우에는 4번과 6번만을 행했다고 한다.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오리 한 쌍은 부부의 백년해로를 의미한다. 버드나무 아래에서 날아가는 오리 한 쌍은 버들 류柳와 다산의 상징 석류 류榴의 발음이 같은 점, 오리 압鴨에 갑甲이 포함돼 과거에서의 장원 급제를 뜻하기도 하는 점으로 미루어, 이 부부의 자손들이 장원급제하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혼인 과정
*이처럼 절차가 복잡하여 왕족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인 경우 여섯 가지 절차를 모두 갖추었지만, 사대부 이하의 경우에는 4번과 6번만을 행했다고 한다.
청사초롱을 든 네 사람은 관청의 노비로, 혼인식 때 관청에서 노비를 빌려 신랑을 호위하게 했다고 한다. 청사초롱을 든 것으로 보아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는 ‘친영’은 밤 중에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돌상 위에 놓인 물건의 의미
*아들의 경우 활, 화살, 장도를 놓아 무예의 기질을 보았고, 딸에게는 바늘, 색지, 실 등을 놓아 여성의 미덕을 강조했다.
아이가 출생하여 무사히 첫돌을 맞는 것은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염병, 질병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아기들의 생존율은 높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첫돌을 맞으면 아이가 오래 살며 복을 누리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돌잔치를 열었습니다. 돌잔치상에는 다양한 물건과 음식을 올려 아이가 처음으로 무엇을 집는지 살피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잡는 것으로 아이의 성격을 살피고 미래를 점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 아이는 책을 잡고 있어 학문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졌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집안사람들이 모여 돌잔치를 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고 생후 21일이 지났을 때 아주 가까운 가족에게만 얼굴을 보였습니다. 돌잔치 때에도 친척들만 모여서 돌잔치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돌상 위에 놓인 물건의 의미
*아들의 경우 활, 화살, 장도를 놓아 무예의 기질을 보았고, 딸에게는 바늘, 색지, 실 등을 놓아 여성의 미덕을 강조했다.
주인공 남자아이는 오색의 돌복을 입고 작은 주머니에 여러 종류의 곡식을 담아 매단 돌띠를 매었다. 돌상은 걸음이 온전치 않은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둥근 상을 사용했다. 돌상 위에는 아이의 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물건을 놓고 아이가 어떤 것을 먼저 잡는지를 보아 아이의 성향과 기질을 보고자 하였다.
돌상 위에 놓인 물건의 의미
*아들의 경우 활, 화살, 장도를 놓아 무예의 기질을 보았고, 딸에게는 바늘, 색지, 실 등을 놓아 여성의 미덕을 강조했다.
돌잔치 날에는 떡을 쟁반이나 대접에 담아 이웃집에 보낸다. 돌떡을 받은 집에서는 그 그릇에 돈, 쌀, 실타래 등을 넣어 답례하는데 이는 아이가 오래 살고 큰 복을 받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여인도 돌떡을 나눠주고 돌아오는 여종일 것으로 보인다.